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시라크 원자로 공습 (문단 편집) === [[이란 공군]]의 오시라크 원자로 1차 폭격(그을린 검 작전/Operation Scorch Sword) === [[이란 혁명]] 직후 혼란을 노려 [[이란-이라크 전쟁|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하자]] 이스라엘은 이란에 오시라크 원자로 폭격을 종용했고[* 이스라엘은 이란에게 미국제 전투기 부품 등 핵심 군수물자와 군사정보를 제공해 주는 거의 유일한 국가였기 때문에 이라크와 전쟁이 시작된 이란에게는 너무 중요한 동맹이었다.] 이란에게도 이라크가 전쟁을 걸어온 이상 핵 능력은 반드시 없애야 했기 때문에 폭격작전을 실행한다. 하지만 미국, 프랑스 등 서방 정보기관들의 방해로 오시라크 원자로에 대한 정보를 거의 얻을 수 없었던 데다 폭격 직전 이스라엘과 시리아 정보기관이 오시라크 원자로에 이미 연료봉이 주입되어 가동 중일 수 있다는 정보를 수집하였기 때문에 원자로를 제외하고 연구소, 통제실, 우라늄 농축기 등의 시설만 폭격해 무력화하는 작전으로 진행되었다. 1980년 9월 30일 8발의 Mk.82 폭탄과 2발의 AIM-7E-2 스패로우로 무장한 4대의 F-4E가 이란-이라크 국경 지역에서 공중급유한 뒤 초저공으로 침투했고, 그 중 2대는 반대쪽인 바그다드의 발전소를 폭격하여 기만작전을 수행하고[* 바그다드가 이틀간 정전되었다.] 다른 2대는 오시라크 원자로 주변 건물과 시설에 16발의 Mk.82를 투하하고 초음속으로 이탈하여 이란으로 귀환했다. [[파일:Operation Scorch Sword.jpg]] 당시 이라크군은 SA-6 지대공미사일 포대 1개, 프랑스제 [[롤랜드 대공 미사일|롤랑드2]] 단거리 지대공미사일 포대 3개[* 프랑스인 기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프랑스가 제공했다.], [[대공포]] 40문으로 오시라크 원자로 주변을 방어하고 있었는데 정작 [[이란 공군]]의 F-4E가 공습할 때는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했다.[* 이란 공군의 F-4E, F-14A에 달린 전자전 장비는 미국에게 업데이트를 받지 못해 이 중 SA-6 지대공 미사일에만 대응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롤랑드 미사일이 발사되었다면 격추되었을 수 있었다.] 이라크와 프랑스는 이란의 공격이 실패였으며 거의 피해가 없다고 발표했지만 현장에 있던 프랑스 기자의 사진을 보면 500파운드 폭탄 16발에 의한 주변 시설 파괴는 확실히 확인되었다. 다만 원자로 본체는 공격받지 않았을 뿐더러 파괴된 주변 건물들도 콘크리트 구조물 건설 단계였기 때문에 주요 장비들은 설치되지 않았던 관계로 복구에는 몇 개월 걸리지 않았다. 시설이 실제로 파괴된 것도 맞고 실질적인 피해가 별로 없었던 것도 맞다. 가장 실질적인 피해는 수백명의 프랑스, 이탈리아 엔지니어들이 안전 문제로 귀국해 버려 반년 가까이 공사가 중단된 것이었다. 2달 후인 1980년 11월 30일에는 피해와 복구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 이란 공군의 RF-4E가 초음속으로 오시라크 원자로에 접근하여 사진 촬영 후 이탈해 귀환했다.[* 이때는 대공포와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이렇게 얻은 사진으로 정확한 시설 파괴 정도와 공사 중단이 확인되어 이란과 이스라엘은 이 폭격작전이 성공이라고 결론내렸다. 또한 오시라크 원전의 정확한 구조와 생김새가 촬영된 사진들은 곧바로 이스라엘로 전달되었고 이스라엘은 이 사진을 바탕으로 자체 폭격 계획을 세우고 오시라크 원자로의 1:1 모형을 만들어 조종사들을 훈련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